가장 행복하고 싶어했으며 가장 사랑받았으며 가장 불행했던 두 사람의 예술가 프랑스의 모파상과 대한제국의 김소월에게 슬프고 가냘프고 청순한 여인들은 애정과 동정의 대상이었다. 이 두 사람은 과감하게 그녀들을 대변하여 펜을 들고 '여인의 일생'을 문장과 시로 남겼다. 특히 나라를 빼앗긴 일제치하의 소월에게는 정조를 빼앗긴 소녀의 이야기가 당시의 대한제국을 보여주는 것 같아 모파상의 소설을 열심히 번역하여 우리글로 남겼다.
옛날 할아버지들이 쓰던 단어, 평안도 사투리 그리고 일본어를 번역한 듯한 외래어들을 현란하게 날줄 씨줄로 얽어 번역소설 그 자체로 새로운 창작물임을 보여주었다. 편저자는 띄어쓰기없이 한문으로 가득찬 원문을 정리하고 우리말 발음을 추가하여 젊은 세대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그리고 생소한 옛말에 주석을 붙여 큰 어려움없이 글을 읽어나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이 글을 번역할 당시의 소월의 심경을 소월의 다른 작품을 들어 어림짐작해 보고 있다. 순수시인인가 저항시인인가 소월의 시는 모호한데 어려서 쓴 글일수록
더 순수하고 나이들어 쓴 글일수록 시대성이 강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일관하는 슬픔이나 한같은 정서는 한국 전래의 오래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 것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피식민지 국민의 울분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김소월은 이 모파상의 소설에서 아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단지 '불서러운 게집!'이라고 안타까워만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호 '소월'도 고향의 '소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둥실 뜬 고향의 달처럼 우리 나라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며, '초혼'도 잃은 조국을 애타게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단편 소설이지만 소월에게는 산문시같은 이 '떠돌아다니는 계집'에서 여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하면서 '누구에게나 그만한 고통은 있는 거겠지요?'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 떠나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는 모파상과 소월은 아련하고 애닯고 안타깝고 애처럽고 반짝거리고 하늘거리고 그물거리고 비단같은 애잔함을 보여준다.
어쩌면 어디에서나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그 일을 겪는 당사자보다 더 진한 공감을 가지고 서사를 엮는 작가를 만나면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픽션 속의 논픽션 그 이야기의 실제인물에게 경의를,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는 대한민국에게 찬사를 보낸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인문대에서 수학하고 한국방송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 파리 실러국제대학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를 받았다. 주재원으로서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에서 홍보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현재 제주에서 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매개자가 되고 싶어서 한국과 동서양의 고전문학을 현대적으로 융합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다